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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의 역사

빈손의 부자 10조 기부왕 '척 피니'

by 맹글맹글 2023. 10. 21.

 

안녕하세요~맹글이 입니다

1997년 세계적인 면세점 CEO의 회계장부가 언론에 공개되면서 미국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이 CEO의 이름은 '찰스 프란시스 척 피니(Charles Francis Chuck Feeney)'
그는 1988년 미국 경제지에 "부유하고 냉철하고 돈만 아는 억만장자"로 소개됐던 CEO였습니다

찰스 프란시스 척피니(Charles Francis Chuck Feeney)
찰스 프란시스 척피니(Charles Francis Chuck Feeney)


그런데 그의 회계장부에는 "뉴욕 컨설팅 회사" 이름으로 15년간 약 2900회의 지출 내역이 있었습니다

지출된 금액은 총 4조 5천억, 놀랍게도 모두 "기부"에 쓰인 돈이었습니다

돈만 아는 억만장자로 손가락질 받았던 척 피니
그는 자신의 재산 99%를 남몰래 모두 기부해오고 있던 겁니다

 

목차

1.  '척 피니(Chuck Feeny)'의 억만장자 성공기

2. 다른 기부와 다른 '척 피니(Chuck Feeny)'의 기부

3. '척 피니(Chuck Feeny)'의 검소함

4. '척 피니(Chuck Feeny)'의 어록

5. '척 피니(Chuck Feeny)'의 죽음

 


1.  '척 피니(Chuck Feeny)'의 억만장자 성공기

미국에서 대공황기였던 1931년 미국 뉴저지의 허름한 집에서 태어난 척 피니는
10살에 크리스마스 카드와 우산을 팔아 용돈을 마련했고,
코넬 대학교 호텔경영학과 재학 시절에는 샌드위치 장사로 돈을 벌며 일찌감치 사업가의 자질을 보였습니다

 

척 피니 가족사진
척 피니 가족사진


제2차 대전 직후 군복무를 한 한국전쟁 참전용사이기도 합니다

 

척 피니 군인시절
척 피니 군인시절


그는 제대 후 귀국하는 미군에게 유럽산 술과 향수 같은 것을 면세가격으로 파는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면세품을 판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신종 사업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보따리상과 다를 바 없는 처지였지만 점차 사업을 키우며 하와이와 홍콩공항에
면세점을 내면서 세계 최초의 면세 쇼핑 체인인 DFS(Duty Free Shoppers)를 설립하게 됩니다

1950년대 미국인들의 유럽관광 증가와 일본의 경제성장으로 미국 관광이 늘어나면서 사업도 크게 번창하게 되고,
1980년대 그의 면세사업은 절정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결국 그의 이름 앞에는 억만장자라는 수식어가 붙게 됩니다 


2. 다른 기부와 다른 '척 피니(Chuck Feeny)'의 기부

기부를 많이 한 부자는 많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개인이 죽은 후 그들의 유산을 갖고 진행하는 생후기부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자선재단 "애틀랜틱 필랜스로피(Atlantic Philanthropies)를 설립해
자신의 재산을 모두 기부하고는 해체했습니다

척 피니는 자신이 살아 있을 때 모든 부를 환원하겠다는 생전기부 원칙을 만들어 
이를 끝까지 실천했고 실제로 전재산 80억 달러(약 10조 원) 내놓은 사람은 
척피니가 처음이고 기부문화가 활성화된 미국에서도 아직까지 유일합니다

그리고 기부할 때 자신의 이름이 드러나지 않도록 익명이나 가명을 사용한 것으로
전해졌는데 돈을 좇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몰리는 것이 싫어 내린 조치였고,
한편으로는 '받는 이의 부담을 덜어주고 싶다면 자랑하지 마라'라고 교육하고
몸소 선행을 실천한 어머니의 가르침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다른 억만장자들에게도 자선사업에 동참하기를 적극적으로 권유했습니다
실제 빌 게이츠 회장의 롤 모델이기도 합니다
워렌버핏은 "척은 나의 영웅이고, 빌 게이츠의 영웅이다. 그는 모두의 영웅이어야 한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빌 게이츠와 척 피니
빌 게이츠와 척 피니
워렌버핏과 척 피니
워렌버핏과 척 피니


3. '척 피니(Chuck Feeny)'의 검소함

척피니는 젊은 나이인 40대에 억만장자에 이름을 올렸고, 그가 창립한 면세점 DFS는
공항 등에서 각종 명품을 판매하면서 매출을 올렸지만 정작 척피니 자신은 
15달러(약 2만 원) 짜리 플라스틱 시계를 차고 식사는 허름한 식당에서 해결했다고 합니다

부의 상징인 호화요트도 구입하지 않았으며 출장 시 비행기는 이코노미석을 이용했습니다

집이나 자동차는 수십 년간 소유하지 않았고 지하철이나 버스, 택시를 주로 이용했습니다 
노후생활을 위해 200만 달러(약 27억)와 5명 자녀에게 남긴 일부 유산을 제외하고 모두 기부했습니다 

그는 사망할 때까지 수년간 샌프란시스코의 방 두 칸짜리 소형 아파트를 임대해 부인과 함께 노년을 보냈다고 합니다

 

척 피니 부부
척 피니 부부


4. '척 피니(Chuck Feeny)'의 어록

'진정으로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은 돈만 내고 끝나는 게 아닙니다.
그들이 자립할 수 있게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합니다'

'부(富)는 사람들을 돕는 데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돈은 매력적이지만 그 누구도 한꺼번에 두 켤레의 신발을 신을 수는 없다'

'부는 축적보다 처리가 더 중요하다'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

'천국에서는 돈이 필요 없다'

'부유한 죽음은 불명예스럽다'

 


5. '척 피니(Chuck Feeny)'의 죽음

기존의 기부가 알려지고 나서도 그는 기부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2000년대 중반부터는 베트남, 남아공 등 세계 곳곳의 교육, 과학, 의료, 인권을 위해 매일
100만 달러(약 11억 원)를 기부를 했습니다

그리고 85세이던 2016년 말, 드디어 자신의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했습니다

지금까지 그가 사회에 환원한 금액은 총 8조 213억 원입니다

그는 향년 92세의 나이로 2023년 10월 9일 영원히 잠들었습니다